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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士와 導師
날짜 2009-02-03 01:50:36 조회 361 추천 0
장봉천

 


 


道士는 도를 갈고 닦는 사람 즉 道人, 道者라고 하겠다. 한자를 풀이하면 길道 자에 선비 士자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적한 산속에 홀로 들어가서 심오한 정신세계에 몰입하여 숨을 죽이고, 큰 뜻을 마음에 담아내려고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길로 접어든 사람이다. 도의 길은 내면의 정신세계를 올바르게 닦을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마저 불태우면서까지 자신이 추구하는 지혜와 덕망을 가슴속 깊이 담았음을 깨달은 후에 세속의 길을 걷는다.


   道士는 선비라는 정신이 항상 뒤따른다. 선비의 길은 올바른 정신세계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선비의 정신세계는 어떠한가? 꼿꼿한 지조와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賜藥(사약) 등 죽음을 불사하는 不橈不屈(불요불굴: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안는다는 뜻)의 정신력과 항상 깨어있는 청청한 마음가짐을 담고 있는 것이 선비의 모습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의 정신세계의 삶이 가장 중요시 되었던 중의 하나가 學行一致(학행일치: 학문과 덕행이 어긋남이 없이 똑 같다는 뜻)이었다. 즉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입으로 아무리 거룩한 말을 하여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남과 함께 자신을 속이는 거짓을 행하는 것으로서 생각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정과 타락에 물들지 않고 도덕을 중시하면서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올바른 것을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비정신이다. 선비들은 남에게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하게 하는 薄己厚人(박기후인)의 정신력을 체질화 시켜 淸貧(청빈)하고, 儉約(검약)한 생활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것이 선비정신이다.


   그러므로 전자의 道士는 선비정신이 갖추어져야할 지혜와 덕망이 마음과 가슴에 새겨질 때에 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道士란 칭호를 만세에 얻으려면 심오한 경지에 몰입하지 않으면 도사라고 할 수 없듯이 도인의 길은 예와 지혜로운 덕망을 갖춘 그야말로 기본이 되는 선비정신이 함축되지 않은 사람을 도인이라고 과연 부르겠는가. 그러면 道士는 예와 지혜로운 덕망을 갖춘 선비정신이 잠재되어 있고 形而上學(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가장 본질적인 학문을 탐구))적인 진리와 철학을 겸비한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서 道士에 대한 보충 설명을 좀 더 자세히 하자면, 선비의 정신과 선비의 삶이 함축되어 있음을 말하고 싶다. 조선 세종29년(1447)창제된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지은 악장의 하나.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에서 선비는 儒士 또는 儒生을 보고 선비라 한다. 선비는 유교적 교양을 습득한 文士로서 관료나 그 후보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오래전부터 사용 된 것을 알 수 있다. 선비 정신을 현세에 깨우친 박지원(18세기 이후의 북학파 학자)의 허생전, 양반전에서 볼 수 있다. 無爲徒食(무위도식)하는 양반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는데, 허생 이라는 선비를 통해 이제는 선비도 경제활동에 종사해야 하는 진정한 선비정신을 뒷받침 해 주는 성공업과 利用厚生(이용후생)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導師는 무엇인가? 불교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어리석은 衆生(중생)에게 바른길을 가르쳐서 깨닫는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자를 풀이하면 이끌導 자에 스승師 자이다. 즉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예지와 덕망을 갖춘 사람, 즉 후학을 올바르게 깨우치고 인도하는 정신세계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스승이며, 스승의 길이다. 후세에 스승의 정신을 남기려면 후학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길이 스승의 도리이며, 올바른 정신세계에서 배운 후학들은 영원히 스승의 참신한 얼을 되새기면서 큰 材木(재목)으로 거듭 날 것이다.


   중생은 개신교에서 重生(중생)은 靈的(영적)으로 새 사람이 됨을 말하는데, 새 사람으로 거듭남을 뜻한다. 불교계에서 衆生(중생)은 부처의 구제의 대상이 되는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통틀어 말한다. 그러므로 導師는 이 세상의 모든 어리석은 중생에게 바른길을 가르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인도주의자 즉 휴머니즘(humanism:인도주의)적인 덕망과 지혜로움을 갖춘 스승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사람을 導師라고 하겠다.


   전자의 道士는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향해 형이상학적인 도를 닦아서 속세에서 이름을 내는 길이요, 후자의 導師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깨우침과 예지와 덕망을 겸비하여 휴머니스즘(인도주의)으로 거듭나서 구제의 대상이 되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은 물론 후학들에게 깨우침의 정신세계를 휴머니스트(humanist:인도주의자가)가되어 어리석은 모든 동,식물 즉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생물을 구제하는 사람을 導師라 할 것이다.


   전자의 道士는 마음의 문이 열려 길이 보이는 것을 말하고, 후자의 導師는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 실체로 바르게 보여주고 있는 진실은 대자연의 이치와 攝理(섭리) 그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그려내고, 담아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추구한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간에 이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라면 양심을 속여가면서 형식과 모방에 치우친 작품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을 사실화로 담아내려고 혼신의 힘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그 속에 진실이 함축된 심오한 정신세계를 그려내는데 혼신의 힘을 바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양심의 울음소리가 작품 속에서 표출되어 자신의 울음이 토해 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道士와 導師가 겸비한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 날 것이다.


   아름다운 예술은 진정 전자의 도사와 후자의 도사가 작품 속에 접목시켜 함축되어 있을 때, 비로소 찬란한 예술의 정신은 물론 예술의 세계가 펼쳐질 줄로 믿는다.


   우리는 흔히 고수들을 보고 길이 보인다고 하는데 그것은 최고의 수준과 기술이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또 산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부르는데, 도인은 오직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감내하면서 무언가를 목적을 이루어 내려고 피를 토하는 인내를 감내하고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도의 경지에 들어간다. 목적달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산을 내려 올 때는 도를 닦아 길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도 그렇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양심이 살아 숨 쉬는 예술에의 길을 걸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는 사진 예술에의 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작품 활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왜냐 하면, 그림의 정신세계에 몰입해 볼 때가 많다. 고호(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 "해바라기 꽃"은 찬란한 태양을 먹고 산다. 해바라기 꽃은 아침에 동이 트면 서산으로 질 때까지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태양 속으로 묻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고호는 화방에서 점원으로 있으면서 어렵게 삶을 살아가면서 동생 테호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마음의 울음을 해바라기 꽃으로 하여금 표출 시키고 있다. 그 뿐인가. 밀레(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와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은 추수가 끝난 황금빛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나이 든 세 농촌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밀레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양심과 겸손이 내재되어 있다. 밀레의 삶도 고호와 같이 노르망디의 가난한 시골농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가난한 생활을 했다. 밀레의 예술은 과장하거나 감상도 섞지 않고,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향이 전남 고흥인 천경자 화백의 그림 "길례언니" 그리고 靜(정) 그림은 삶이 어려운 시기에 대작으로 일구어 낸 그림으로 평가 받고 있다. 길례언니는 당시 소록도병원 간호사였던 초등학교 선배 언니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인데, 우수에 가득 찬 모습이 우리들 마음을 울리고 있는 작품이다. 저는 작품의 세계에서 고호의 그림이나, 밀레의 그림이나, 생존해 계시는 천경자 여사의 그림들은 평범한 곳에서 그려진 것이며, 오늘 날 大衆(대중)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대작을 남기고 있다.


   그림의 세계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신의 세계를 일깨워 주고 있다면 사진예술세계에서도 아름다움의 추구로 승화할 수 있는 마음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리얼리티(reality:진실성,사실,본체)한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때, 道士와 導師가 겸비한 작가로서의 아름다운 정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저의 예술세계는 전자와 후자의 길이 험난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하여 내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 자신에게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바른 길로 가려고 노력함은 물론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걷고 싶다.


   2009.1.31 (한사협 홈페이지 게재)


  글쓴이: 丁巖 장봉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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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덧글 (1)건
이경자 2009-02-05 00:00:00
봉천님 귀한 발걸음 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