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편의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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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빈들에서서
날짜 2009-03-19 11:19:02 조회 350 추천 0
이경자
빈들에 서서...

 

                                      이경자        




농촌이 늙어있다.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절실히 느껴지는 현실이다.
 
내가 시집올 때만해도 젊은이 못지 않게 건장하시던 아버님이 이제 팔순을 넘기고 있다.

 밤낮으로 힘겨움을 모르고 일하시던 아버님이 들녘을 돌보지 않은지 2년여가 되자 잡초만 무성한 빈땅을 보니 서글퍼진다.


 신혼초 남편과 미리 휴가를 내어 모내기 철에 고향에 내려갔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농사일을 전혀 모른다. 농번기 때 가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참이라도 해다 나르려고 맘 먹었다.


  시아버지가 무논에 들어가 모를 내는 모습을 멀건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과학이 발달해 모든 것을 기계로 해결한다지만 트랙터가 들

어가지 못한 곳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를 낸다. 모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들어가 모를

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허리를 구부린 시아버지의 흰머리가 잔바람에 하늘하늘 날렸다. 도회지에서만 살았던  나의 눈에는 사뭇 정겹고 한가로운 풍경이다. 촌노는 모를 내고 맑은 햇살은 논둑에서 출렁이고, 트랙터는 모판을 싣고 새파란 줄을 긋듯 넓은 논에 모를 심으며 기우뚱기우뚱 갔다.



 시아버지가 무릎위에 팔을 짚고 모를 내다 간간히 허리를 펴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눈빛에 고단함이 역력히 묻어있었다. 막연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길가에 새참그릇을 놓아두고 논둑으로 내려갔다.



 “ 저도 모를 심을 까요?”

 시아버지는 내가 기특하신지 허허허 하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모춤을 내 앞으로 철퍽 던져주셨다. 나는바지를 걷어 올리고 무논으로 들어갔다. 물이 발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발가락 사이로 미끈덕한 흙이 끼어들었다. 거머리가 걸려든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무나 하는 거 아녀”

 시아버지는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한 움큼 모를 집어 들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물에 집어넣기만 하면 저절로 모가 서는 줄 알았다. 모를 찢어 물에 넣었더니 둥둥 떠올랐다. 시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시며 옆으로 다가 오셨다.

 “네 개에서 다섯 개의 모를 손가락 한마디쯤 땅 속에 들어가게 심는 거란다”

 나는 가르쳐 준대로 모를 심었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한귀퉁이를 다 심을 때까지 겨우 스무 포기도 심지 못했다. 그런데 허리는 끊어지게 아팠다.


 “아버님 새참 드셔요”

 나는 잠시 허리를 펼겸 새참을 먹자고 제의했다. 눈치 빠르신 시아버지는 앞장서서 논둑으로 나가셨다.

  “힘들쟈?”

  “아네요”


 나는 시아버지가 드셔야할 부추전을 쭉 찢어 입에 넣었다. 꿀맛이었다.
그늘도 없는 들판에서 음식을 먹는 맛도 괜찮았다. 시아버지가 탑탑한 막걸리를 비울 때마다 나는 안주로 내온 부추전을 축냈다.




 시아버지가 다시 논으로 들어갔다. 나도 촌부가 된 듯 따라 들어갔다. 무논에 적응을 못해  비틀거렸다. 몇 번을 처박힌 발을 빼내려고 몸부림쳤지만 이내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모심는 동작이 느렸는데 제법 속도가 붙었다. 나는 햇볕이 따갑게 내려 쬐는 줄도 모르고 모심기에 열을 올렸다.


  “인자 잘 하는구만”

  시아버지가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 나는 난생처음 모를 내는 일이 흥미 있었다. 해가 지도록  첨벙거리며 모내기를 했다.

  “저녁을 짓는다드만 왜 이렇게 늦게 왔데야?”


  부엌에서 시어머니가 나오시며 물었다. 나는 모를 심었다고 한참을 자랑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얼굴 그을리는데 논일을 하게했다고 시아버지를 보며 눈을 흘기셨다. 나는 뿌듯하고 행복했다.



 시골의 밤은 아름다웠다.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정겨웠다. 까만 하늘에 초승달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졌다. 별들이 내 치마폭으로 쏟아질듯 출렁거렸고 먼데서 묏비둘기 우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나는 싱그러운 초여름 냄새를 덮고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린다. 농촌이 늙었다고 방관하면 안 된다. 도시의 젊은이들이 시간 나는대로 거들면 다시 농촌은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혈기를 맛보면 한결 분위기가 활기찰 텐데 바쁜 일상에 쫒기다보니 맘먹은 대로 내려가지 못한다. 올해는 시간을 내어 농활이나 가 볼까한다.    

           = 2006년 강서문협 13호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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